직원들은 전선을 집을 때마다 테이블 위를 바라보면서 꼼꼼히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전선의 특징과 연결 부위가 적힌 복잡한 설계도면이 펼쳐져 있었다. 오상훈 카프마이크로 개발생산팀 부장은 “올 10월 발사가 예정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속 전자장치들 간에 연결할 전선과 장치들의 범위가 모두 표시돼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누리호는 길이 47.2m, 무게 200t인 3단형 우주 발사체다. 무게 1.5t의 인공위성을 고도 600∼800㎞의 지구 저궤도(LEO)로 실어나른다. 누리호가 이렇게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 사용된 전자 부품만 수백 가지에 이른다. 발사체의 발사와 자세 유지, 안전, 조종 등을 위해 각종 컴퓨터 장치들이 들어간다. 이들을 모두 연결해 신호와 전원을 전달하는 것은 전선과 커넥터를 모아 만든 전선 다발인 ‘와이어 하네스’다. 사람으로 치면 온몸에 연결된 신경과 같은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장비다.
이날 공장에서는 누리호의 세 번째 비행모델-3(FM-3)에 들어갈 와이어 하네스 제작이 한창이었다. 작업자들은 1단에 들어가는 커넥터 498개가 이어진 전선들을 총 54개 다발로 이어진 하나의 와이어 하네스로 구성하는 작업을 조심스럽게 이어갔다. 2단 와이어 하네스는 커넥터 327개와 전선 다발 39개로 구성되고 3단은 커넥터 321개와 다발 28개로 이뤄진다.
가전 제품을 사면 마지막에 전선을 연결하는 것처럼, 와이어 하네스도 누리호 조립에서 가장 마지막에 부착된다. 핵심은 정확한 길이다.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무게가 늘어날뿐더러 내부 공간을 더 차지한다. 반대로 길이가 조금이라도 짧아 전자장치들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하면 누리호를 가동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진다. 오 부장은 “전선 다발의 길이와 두께를 맞추기 위해 전선을 묶을 때의 각도도 들어갈 위치에 맞춰 정확한 규격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전선과 커넥터를 보면 누리호 1단과 3단에 들어가는 기준이 다르다. 1단은 대기권과 성층권 내에서 주로 쓰이기 때문에 항공기와 같은 규격을 활용할 수 있다. 반면 500km 이상 고도에 도달하는 3단은 외부 복사열을 견디고 진공 상태에서 소재 속 유해가스가 빠져나오거나 하지 않는 자재를 선정해야 한다. 커넥터와 전선 사이를 연결할 때도 3단은 위성 외부를 싸는 데 쓰는 케톤 테이프를 활용해야 한다.
소재 선정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한편에선 무게를 줄이는 작업도 필요했다. 당초 누리호에는 약 700kg안팎의 와이어 하네스가 들어갈 것으로 추정했지만 더 줄여달라는 요청이 계속해 들어왔다. 회사 관계자들은 해외에서 판매되는 전선용 소재를 이잡듯 뒤져 은이 들어간 소재를 찾아내고 무게를 310kg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카프마이크로는 발사체용 와이어 하네스 외에도 항공기용 시뮬레이션 패널, 테스트 장비를 개발하며 지난해 매출액 44억 5816만원을 기록했다. 최근 항공분야 산업의 정체기로 어려움을 겪던 중 누리호 사업은 새로운 동력이 됐다. 오 부장은 “2016년부터 항공분야 정체기가 시작되며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때 누리호 사업을 맡아 우주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을뿐 아니라 매출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와이어 하네스 산업는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만큼 절대적으로 인건비가 영향을 준다. 전자 산업이나 자동차 산업 등 와이어 하네스가 필요한 업종은 대부분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공장을 차려 운영하고 있다. 카프마이크로는 고품질화로 승부해 왔지만 와이어 하네스 분야는 전략적으로 국내에 반드시 있어야할 기술이지만 카프마이크로뿐 아니라 국내 기업들의 설 자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10월로 예정된 누리호 발사에 대해 성공을 낙관하면서도 파생사업이 보이지 않는 것은 걱정거리라고 했다. 오 부장은 “누리호가 발사에 성공하면 참여업체들이 모두 기술력은 검증돼 해외와 십수년 이상 벌어졌던 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면서도 "후속 사업이 시작해도 수년 후에야 기업이 참여하게 될 텐데 관련 사업이 미리 꾸준히 연계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